1세대 방송인 고려진 전 아나운서가 지난 21일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79세. 고인은 지난 1962년 KBS 제주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1964년 TBS 개국과 동시에 이적해 1987년까지 일했다. 고음의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가로수를 누비며’, ‘운전사 노래자랑’, ‘6대 가수쇼’ 등 프로그램을 진행해 1960, 70년대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42년 제주에서 나고 자란 고려진 씨. 1962년 KBS 제주방송(라디오) 아나운서가 되면서 방송과의 인연을 맺었다. 1964년 TBC 동양방송 개국 당시 스카우트 돼 1987년까지 TV 브라운관 아나운서로 명성을 떨쳤다. 그 후 1995년부터 TV홈쇼핑으로 무대를 옮겨 쇼호스트로서 제2의 인생을 펼쳤다. 당시 그의 나이 53세. 39쇼핑(현 CJ오쇼핑)의 1기 쇼호스트들의 평균연령이 20대이다 보니 그는 최고령의 쇼호스트였고 동료 쇼호스트들의 ‘엄마’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20여 년 인기 절정의 아나운서로서 카랑카랑하면서 맑은 음색, 똑 부러지면서도 우아한 표현력으로 그는 홈쇼핑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 그의 ‘엄마’ 같은 이미지와 전문성도 한몫해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줬던 것. 그는 2000년 8월에 여성 쇼호스트로서 처음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렇게 2002년까지 7년간 CJ39쇼핑 간판 쇼호스트 자리를 지켰다.
지난 1월 18일 고려진(74) 전 CJ오쇼핑 이사를 만났다. 홈쇼핑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그를 두고 대한민국의 진정한 1호 쇼호스트’ ‘최초·최고령 홈쇼핑 진행자’ ‘생방송 32년 기록의 소유자’ ‘동종업계 유일한 여성 이사’ 등이라 입을 모았다. 그는 2002년 10월 CJ오쇼핑에서 임원으로 정년퇴직한 후 14년 만에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가졌다.
고 씨는 “2년 동안 CJ39쇼핑 방송사업부 이사를 역임했고 쇼호스트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간간이 홈쇼핑 방송에 출연했다”며 “그 시절 젊은 쇼호트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쇼호스트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꼈던 젊은 쇼호스트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기도 했다. 실제 그는 많은 쇼호스트 후배들이 존경하는 멘토이자 신화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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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쇼호스트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TBC 동양방송 아나운서 시절, 1980년대에 방송환경이 바뀌면서 진행자들이 우스갯소리를 해야 하는 재미를 요구했어요. 그 상황을 적응하기 어려워 1987년에 은퇴를 했어요.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면서 방송 출연 요청도 거절했어요. 그 와중에 당시 39쇼핑 사장이 제게 쇼호스트를 권유했죠. 저는 3개월쯤 망설였어요. 쇼호스트가 생소한 직업이었고 상품을 파는 직업이어서 쉽게 승낙할 수 없었어요. 그분은 상품을 판다고 생각하지 말고 제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상품정보를 잘 전달하면 된다,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고객에게 설명하면 된다고 설득했어요. 저는 단순한 세일즈맨에서 벗어나 상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우리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나 장·단점을 연구하면서 쇼호스트를 하면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보자 결심했고 쇼호스트가 됐습니다.”
황을 알려주세요.
“시집간 딸과 함께 살다가 아들의 직장을 따라 5개월 전 분당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겨서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가족 간에 서로 아끼고 서로 도와주는 게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요.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 직장과 가정 두 가지를 동시에 완벽하게 할 수 없어서 상황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방송을 앞두고는 다른 중요한 일을 제쳐놓았고 휴일에는 가족에게만 충실했습니다. 그렇게 직장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퇴직한 후엔 가정이 우선순위가 됐는데 요즘은 시력이 너무 좋지 않아 되도록이면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습니다.”
언제 시력이 악화됐나요.
“벌써 8년이나 지났습니다. 백내장과 녹내장이 찾아와 시력이 악화됐는지 몰랐어요. 안경을 바꾼 지 3개월이 지났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병원에 가봤더니 녹내장이라고 했어요. 의사가 저한테 이렇게 눈이 망가지도록 병원에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죠. 녹내장은 조기 치료를 해야 하는데 시신경 3분의 1이 손상될 때까지 방치했던 겁니다. 백내장 수술을 했지만 녹내장으로 손상된 시신경은 치료를 할 수 없어서 약 처방만 받았습니다.”
외출은 어떻게 하시나요.
“지금 제 시력은 형체만 어렴풋이 보이고 거리감이 없어요. 그래서 혼자서는 어디나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곳만 다니죠. 승강기 버튼이 어디 있는지, 몇 호인지 혼자 찾을 수 없거든요. 아직까지 후배 쇼호스트들이 종종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저를 집까지 데리러 오고 데려다 줘야 합니다. 그 후배들 중에서 방송이 없는 후배를 찾아 그 역할을 맡겨야 하는데 참 미안해서 편하게 만날 수가 없어요.”
아나운서와 쇼호스트의 차이점이 있나요.
“여성으로서 아나운서와 쇼호스트는 참 좋은 직업입니다. 제게는 쇼호스트가 더 신났어요. 왜냐면 정보를 전달하는 정적인 아나운서보다 상품을 판매하는 쇼호스트가 박진감이 넘치고 동적이잖아요. 일단 쇼호스트는 상품을 팔고 돈을 벌기 때문에 재밌어요. 방송은 시청률과 관계가 있지만 홈쇼핑은 판매율과 관계가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으면 기쁘듯이 쇼호스트는 홈쇼핑 방송의 판매율이 높으면 신이 납니다. 쇼호스트가 판 상품이 몇 프로 나갔는지 모니터 화면에 뜨는데 그때 그 짜릿짜릿한 기분과 기쁨은 쇼호스트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습니다.”
1995년 8월 1일 39홈쇼핑에서 첫 방송을 했는데 그날이 기억나시나요.
“그때의 흥분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1995년 8월 첫 방송을 할 때 뻐꾸기시계를 10개 진열해놓고 저 혼자 판매를 했죠. 그땐 한 상품마다 6~7분씩 방송을 했거든요. 첫 방송에 1시간 동안 뻐꾸기시계 4개가 판매됐습니다. 하루 동안에는 11개가 팔렸을 거예요. 참, 방송 중 뻐꾸기시계 문이 열렸는데 뻐꾸기가 나오지도, 소리가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 상황에서 저는 ‘뻐꾸기가 산으로 나가버렸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웃기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첫 방송 이후에 다뤘던 상품 중에 인상적인 상품이 있나요.
“셀 수 없이 많은 상품을 다뤘습니다. 칼을 상품으로 팔 때가 생각나네요. 칼을 팔아야 하는데 칼만 있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서 배추, 오이 등을 계속 썰면서 칼질을 연습했어요. 막상 홈쇼핑 방송에서 칼로 쓱싹쓱싹 야채를 썰었더니 TV화면에 정말 칼 잘 들게끔 비춰져 칼 주문량이 늘었어요. 그리고 모피코트를 판매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 모피는 고가의 옷이어서 잘 판매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피를 TV화면으로 보여주면 선뜻 누가 사겠어요. 모피의 품질이 좋은지 나쁜지 확인해야죠. 얼마나 윤기 나는지, 얼마나 가벼운지
소비자는 따져봐야 삽니다. 저는 품질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보여주려고 선풍기를 이용했어요. 모피를 바람에 날리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모피를 많이 팔았어요. 게다가 제가 모피를 입으면 잘 어울리는 체형이라는 평도 있었죠.”
CJ39쇼핑 이사 시절 쇼호스트 교육을 주관하셨는데.
“이사를 역임할 때 매주 4회 홈쇼핑 방송을 했고, 매주 1회 쇼호스트 교육을 했습니다. 후배 쇼호스트를 교육하는 데에 열정을 다했습니다. 저는 쇼호스트로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쇼호스트는 고객들에게 상품을 파는 사람이다, 세일즈맨이다’는 인식을 주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쇼호스트는 상품에 대한 연구를 해서 고객들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교육을 받았던 쇼호스트들의 방송을 보면 뭔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좋은 쇼호스트란 뭘까요.
“마음이 고운 쇼호스트,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쇼호스트입니다. 이러한 쇼호스트가 되려면 먼저 ‘웃음’을 지녀야 합니다. 마음이 곱지 않고선 웃음을 지을 수 없을 겁니다. 쇼호스트 얼굴만 봐도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쇼호스트가 행복감을 준 거 아닌가요. 다음으로는 상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이를테면 쇼호스트는 아나운서처럼 기본적인 자세나 소양을 갖춘 다음 상품을 제대로 팔 수 있도록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경험으로는 쇼호스트가 아나운서보다 한층 더 어려운 직업이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월간 홈쇼핑에게 한 말씀.
“요즘 홈쇼핑 방송 채널이 다양해졌습니다. 그 만큼 고객들은 다양한 상품을 만날 수 있지만 좋은 상품을 고르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고객들이 좋은 상품을 제대로 고를 수 있도록 매거진이 정성껏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홈쇼핑 방송을 시작한 지 21년이나 됐는데 이제야 매거진이 생긴다는 게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절대 사라지지 말고 잘 꾸려나가길 바랍니다.”